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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풍산부인과’의 열렬한 팬이다. 선우용녀가 큰딸 박미선과 함께 문화센터에서 시쓰기 강좌를 들을 때 지었던 ‘주전자’라는 시도 외우며 [삐삐 주전자가 운다 / 엉뎅이(엉덩이)가 뜨거워서 우는 걸까 / 얄미운 가스레인지(이하 생략)], 화투로 맺어진 오박사와 선우용녀의 인연을 다룬 에피소드도 지금 한 장면 한 장면 다 떠올릴 수 있다.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수 없다’도 나와 내 친구들은 ‘웬그막’이라고 줄여 부르며 매일 전날의 에피소드로 한참 수다를 떨며 웃곤 했다. 역시 ‘똑살’로 통했던 ‘똑바로 살아라’는 앞의 두 시리즈보다는 약했지만 그래도 종영을 아쉬워했다. 태생이 같은 이 시리즈들을 나는 진짜 재미있는 시트콤으로 친다. 물론 지나간 것들을 떠올리면 배우들의 과장된 코믹 연기가 가장 먼저 생각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에는 억지 상황은 없다. 누구나 ‘그래 저런 사람 꼭 있어’라고 공감할 정도의 살아 있는 캐릭터가 벌이는 현실적인 상황으로 폭소를 만들어낸다. 이것,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라면 다른 시트콤들은 왜 모두 억지 상황만 만들어낼 것인가.
지난 주 어느 저녁 리모콘을 눌러 이리저리 채널을 옮기던 중, 이상한 드라마를 보게 됐다. 재미있다. 뭐지? ‘올드 미스 다이어리’였다. 끝까지 다 본 다음 왜 지금까지 이걸 보지 못했을까 후회까지 하게 됐다. KBS2에서 그 시간대에 편성해 왔던 이른바 ‘시트콤’들이 다 별 볼 일 없었기에 새 시트콤을 한다는 예고에도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게 실수였다. 이것, 숨은 보석이다. 요즘은 매일 ‘올미다’를 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옥, 한영숙, 김혜옥, 세 할머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웃음은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시트콤들에서 보인 것보다 한층 강도가 세다. 현실적이면서도 아주 기이하다. 과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이게 되는 그런 웃음이다. 노인을 놀리나 싶을 정도지만, 세 연기자가 어찌나 능청스럽게 과장되지 않은 연기를 하는지 장면이 한참 지난 다음에 비로소 입에 든 과자를 뱉으며 웃게 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싱글인 세 명의 여주인공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서른 즈음 직장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과 대화가 꽤 현실감 있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는 조용하다. 시끄럽게 목청을 높여 떠드는 연기자도 없고 이상한 분장과 의상으로 요란을 떠는 연기자도 없다. 우습지도 않은데 억지로 넣어놓은 방청객의 웃음소리도 없다. 대신 썰렁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나 새 울음소리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충분히 웃기다. 꽤나 탄탄한 대본과 적절한 대사, 진지한 연기 덕분이다. 현실적인 캐릭터와 대사가 코미디에서도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순풍’과 ‘웬그막’ ‘똑살’을 사랑했던 내 친구들조차 ‘올미다’를 잘 모르고 있었으니 이 보석이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by yoni FILM2.0 #213 2005.01.18. |